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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차재춘 교수] "서양 수학, 따라가기 급급···한국 수학 '동형암호' 역습"
최고관리자 2024-05-07

[수학자열전 ①] 천정희 서울대 교수
한국 최고의 암호 연구자
글: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수학은 모든 학문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고 증명하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는 학문입니다. 대덕넷(HelloDD)은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와 함께 대한민국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학자를 발굴해 연재하고자 합니다. 첫 보도는 최고의 암호 연구자 '천정희 서울대 교수'입니다. 격주로 소개되는 수학자 연재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만나 보시죠.[편집자 편지]

◆ 수학은 미래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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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한국의 수학 '동형암호'를 개발, 대한민국 최고의 암호 연구자로 알려진다.[사진=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천정희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를 만나보라고 여러 수학자가 말해줬다. 한 암호 전공자는 천 교수에 대해 "한국에서 암호를 제일 잘 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천 교수를 만나러 가기 전 자료를 찾아봤더니, 그의 동영상 강의가 몇 개 있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50분 분량의 강의를 들으며 미리 공부를 했다.동영상 강의 내용 중 동형암호(Homomorphic Encryption)라는 낯선 용어가 나왔다. 동형암호는 제4세대 암호이고, 데이터를 암호화된 상태에서 처리할 수 있어, 개인 정보 유출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사이트에는 천정희 교수 전공이 '수론, 응용수학(암호론, 정보보호)'이라고 나와 있다. 그에게 어떤 질문을 먼저 할까를 생각했다. '전공이 수론과 암호론이다. 두 수학 분야가 어떻게 만나는가'라고 물을까? 아니면 '어떻게 암호를 전공하게 됐나'를 물어야 할까?

지난 5월 24일 서울대학교 25동 산업수학센터에서 만난 천정희 교수는 "연대기적으로 얘기를 할까요 아니면 수학에 대해 말을 할까요?"라고 물어왔다. 편한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라고 했다.

그는 '수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먼저 들려줬다. 그는 "사람들은 보통 수학을 과거의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수학이론이나 위대한 수학자가 과거에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수학은 굉장한 미래의 학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천정희 교수는 KAIST 수학과 87학번. 2학년 때 수리과학과를 선택했을 때 3학년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식을 해줬다. 이때 선배들의 질문 중 하나는 ‘수학과에 왜 왔냐?’였다. 그때 나온 답변 중 하나는 "내가 맞다고 증명하면 전 세계 어떤 수학자, 가령 (위대한 독일 수학자) 가우스가 와도 뒤집을 수 없다"였다. 이런 게 수학의 매력이라고 천 교수는 생각한다.

"물리학은 신이 만든 세상을 연구하고, 수학은 신이 만들 뻔했던 세상들을 연구한다 라는 말이 있다. 물리학과 달리, 수학은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 수학자가 어떤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고 증명을 하면 그게 맞는 거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수학이 가진 장점은 앞날을 가보지 않고 예측할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대학 다닐 때 SF를 좋아했다. 미국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의 작품 '파운데이션'이 있다. 파운데이션 1, 2편에 수학자 해리 셀던이 나온다. 천 교수에 따르면, 해리 셀던의 말에 "인간 개개인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이지만 충분한 숫자의 인간 집단의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가 있다. 천정희 교수는 2003년 3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로 임용된 직후 동료 교수들 앞에서 자신의 연구 내용을 소개하는 '콜로키엄'을 했다. 이때 그는 발표를 해리 셀던의 말로 시작했다. 그는 당시 발표한 슬라이드를 아직 갖고 있다. 천 교수가 컴퓨터를 열어 당시 슬라이드를 찾아 보여준다. 천 교수 말을 들어본다.

"아시모프 말이 두 가지 면에서 매력적이었다.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다. 열역학법칙을 보면 분자 하나 하나의 운동은 브라운 운동을 하니 예측 불가능하나, 분자 전체 집단의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 그러니 충분히 많은 인간의 데이터가 모이면 인간 집단 전체의 예측도 가능하다. 대상으로 삼는 인간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정확도가 늘어난다. 지구 정도 규모에서는 안 되고, 은하 제국 정도 수준의 인구 전체 통계가 모이면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아시모프 얘기의 두 번째 매력은 이거다. 작품 파운데이션 속 해리 셀던은 심리 역사학이라는 학문 전공자다. 소설 속에서는 심리역사학이 수학의 한 분야다. 내게는 그게 충격이었다. 아시모프는 원래 물리학자다. 물리학자인 아시모프가 보기에 인간의 미래를 연구하는 학문은 '물리학'이 아니고 '수학'인 거다. 물론 현재 얘기는 아니고, 아주 먼 미래 얘기다. 작품 속 해리 셀던의 생물연대는 은하력 11988-12069이다. 나는 그런 걸 보면서 수학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미래, 그리고 생각이 자유로운 건 수학이라고 본다. 수학은 무엇이든 허용된다. 논리적으로 맞으면. 그리고 한 번 맞으면 누가 와도 그걸 바꿀 수 없는 불변성이 있다. 그러니 수학이 미래의 학문이라는 생각이 매력적이었다."

천 교수는 이어 "2010년쯤, 그러니까 10여년 전에 해리 셀던의 심리역사학이 뭔지를 좀 깨달았다. SF에 나왔는데, 현실에 강림했다는 걸 알았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암호를 제일 잘하는 수학자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다. 헌데, 그는 SF작가와 그가 남긴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다. 그리고 SF에서 읽은 내용이 현실에 구현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나는 그에게 "그게 뭐였느냐. 무슨 말씀이냐"라고 물었다. 천정희 교수가 "요즘 유행하는 머신 러닝(machine-learning)이 그거다. 심리역사학이라는 게 일종의 패턴 찾기다. 내 생각에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게 머신 러닝이다"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암호 연구 이야기로 가기 전에 머신 러닝, 즉 기계 학습 이야기를 먼저 들려줬다.

◆ 머신 러닝

천정희 교수는 "머신 러닝은 데이터에서 함수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함수를 찾으면 함수에 현재 상태를 입력한다. 그러면 함수는 예측을 준다"라고 말했다. 천 교수가 챗봇(chatbot) 예를 들었다.

챗봇은 음성이나 문자를 통해 사람과 대화를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챗봇의 음성 인식 능력 부분을 보자. 기계에 사람 목소리를 많이 집어넣는다. 입력을 해서 기계를 훈련시킨다. 사람의 소리를 집어넣고 훈련시키면 기계는 그게 사람 목소리라는 걸 알아듣는다. 소리에서 패턴을 인식해, 즉 의미를 추출해 말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입력과 출력 과정은, 수학적으로 보면 함수다. 챗봇에 어떤 값을 입력하면 챗봇이 함수가 되어 어떤 출력을 한다. 특별한 함수다. 기계학습이라는 건, 입력이 들어가면 뭘 출력하면 좋을지를  알려줘서 스스로 함수를 계속 보정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머신 러닝은 세상을 기술하는 함수 찾기이고, 수학으로 세상을 기술하기라고 할 수 있다.

천 교수가 이번에는 신용 점수를 생각해 보자고 했다. 한 사람의 개인 신용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가 부도가 날지, 안 날지를 예측하고 싶다. 그걸 기계적으로 해보자는 거다. 기계에 많은 사람의 신용 점수를 넣어주면서 기계 스스로가 부도가 날지 안 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도록 학습시킨다. 출력 값이 틀리면 컴퓨터 알고리즘이 스스로를 계속 개선하도록 한다. 맞도록 고쳐간다. 어떻게 고쳐 가는지는 일반인이 알 필요가 없다. 수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고만 알면 된다. 이런 걸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이라고 한다. 과거 데이터를 모아서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거다. 훈련 데이터(training data)를 많이 갖고 있으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고, 이때 데이터가 많으면 SF '파운데이션'에서 아시모프가 말한 대로 은하 제국의 미래를 알 수 있다. 천 교수는 "그러니 머신 러닝이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머신 러닝과 암호의 접점

그런데 머신 러닝과 천정희 교수의 암호 연구의 접점은 무엇인가? 천 교수가 암호와 떨어져 있는 걸로 보이는 얘기들을 계속 들려주니, 좀 불안하다. 천 교수가 "그 말씀을 드리겠다"라고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갔다.

"암호화된 자료는 금고속의 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열쇠를 안전하게 보관하면 금고안의 보석은 안전하다. 열 수 없으니까. 그러나 단점이 있다. 데이터가 금고에 들어있어서 그걸 꺼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려면 데이터를 꺼내야 하니, 이때는 암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최근에 동형암호가 나오면서 달라졌다. 동형암호로 처리된 자료 역시 금고속 보석인데, 말랑말랑한 금고다. 금고 안에 있는 보석을 꺼낼 필요 없이, 즉 암호를 풀지 않고서도 데이터를 가공할 수 있다. 안에 들어있는 상태로 손을 집어넣어 사람이 원하는 의미 있는 결과만을 꺼낼 수 있다. 가령 머신 러닝으로 훈련시킨 알고리즘이 있다고 하자. 개인의 의료 데이터를 집어넣고 그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을 얻어내고자 한다. 암 발병 확률을 예측하려면 기존에는 그의 의료 데이터를 금고에서 꺼내서 작업을 해야 했다. 동형암호를 사용하면 금고 안에 들어있는 상태, 즉 암호화된 상태에서 데이터를 조작하고 계산한다. 나의 암 발병 확률을 알아내는데, 나의 의료 데이터가 유출되지 않는다. 데이터의 암호를 풀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보지 않고, 결과물만 얻어내는 거다."

천정희 교수가 이 시점에서 동형암호가 무엇인지 얘기를 할까 하다가, 일단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더 설명하겠다고 했다. 동형암호와 머신 러닝이 만났고, 만나서 그게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줬다.

천 교수에 따르면, 머신러닝과 동형암호를 합친 게 '프라이빗 A.I.(Private Artificial Intelligence)'다. 프라이빗 AI를 정확히 표현하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기계학습(Private Preserving Machine Learning)'이다. 이는 미래의 암호 개념이다.

머신 러닝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냐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데이터'라고 한다.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데이터가 없느냐,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데이터가 널려있다. 의료 데이터와 같은 건 아주 많이 모아놨다. 문제는 개인 정보 유출 위험 때문에 이 데이터를 쉽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게 '프라이빗 AI'다. 프라이빗 AI는 머신 러닝을 위해 데이터를 사용하지만 동시에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한 거다.

천 교수에 따르면, 프라이빗 AI 개념을 처음 말한 사람은 미국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인 크리스틴 로터(Kristin Lauter)다. 미국 정보통신기업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던 로터 박사는 2012년 한국정보보호학회가 주최한 국제암호관련 학회인 ICISC(International Conferece on Information Secutiry and Cryptology)에 참석, 초청 강연을 하면서 '프라이빗 AI' 개념을 내놓았다.

그리고 '프라이빗 AI'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나온 건 2017년 7월 미국 기업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연례 컴퓨터과학 학회(Microsoft Research Faculty Summit)에서다. 학회는 미국 시애틀 인근의 레드먼드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캠퍼스에서 열렸으며 이 학회에는 초청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참석한다. 2017년 학회의 세션 중 하나가 '프라이빗 AI'였고, 이 세션의 발표자 세 명 중 한 명이 천정희 교수였다. 천 교수는 "나는 프라이빗 AI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중 한 명이다. 머신러닝은 흥미롭게도 동형암호화 상태에서 처리하기가 더 쉽다"라며 암호의 역사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  천 교수의 4세대 동형암호 개발

오늘날 전자상거래에서 널리 사용되는 공개키 알고리즘 방식인 RSA(Rivest-Shamir-Adleman) 이고, 1978년에 나왔다. RSA는 나온 지 40여년이 지났다. RSA가 나온 같은 해에 동형암호도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RSA를 만드는 데 참여한 R(로널드 라이베스트)과 A(레너드 애들먼), 그리고 다른 수학자인 D(M. L. 데투조)가 RAD라는 동형암호 개념을 내놨다. RAD 세 사람은 "암호화된 데이터 위에 임의의 계산을 할 수 있는, 그런 암호화 방식(Arbitrary Computation on Encrypted Data)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이들이 응용 분야로 얘기한 게 흥미로웠다. 아웃소싱한 계산(Outsourced Computation)을 응용으로 제시했는데, 40년 전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RAD 동형암호(RAD Scheme)는 모두 깨졌다. RAD는 모두 5개의 암호를 만들었으나, 다 깨졌다. 마지막으로 깨진 게 1981년이었다. 그리고 그해 세계적인 암호학회인 크립토(Crypto)가 처음 열렸다. 마침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터바버라에서 열린 크립토 학회에 RAD가 만든 마지막 동형암호를 깨는 두 쪽 짜리 암호가 제출되기도 했다. 천 교수 말을 옮겨 본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팔이 하나 들어가는 말랑말랑한 금고는 쉬웠다. 즉 덧셈만 하거나 곱셈만 하는 동형암호는 쉬웠다. 덧셈과 곱셈 두 개를 다하면 컴퓨터의 연산을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덧셈과 곱셈 연산을 다하는 동형암호를 만드는 일이 암호학계의 성배(holy grail) 찾기가 되었다. 30년을 해도 진척이 없었다. 2008년에는 덧셈과 곱셈이라는 두 연산을 보존하는 연산은 불가능하다는 논문이 나왔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의 컴퓨터과학자이자 암호학자인 우엘리 마우러(Ueli Maurer)의 논문이었다. 그런데 2009년에 획기적인 논문이 나왔다. 1세대 동형암호다. . 미국의 젊은 암호학자 크레이그 젠트리(Craig Gentry)가 덧셈과 곱셈 연산 모두를 보존하는 동형암호를 개발했다. 이 연산을 영어로는 Somewhat Homomorphic Encryption이라고 하는데, 내가 한국말로 ‘유한동형암호’라고 이름 붙였다. 이 논문을 통해 두 연산 모두를 보존하는 연산은 불가능하다고 한 마우러를 젠트리가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젠트리는 같은 논문에서 ‘완전동형암호’를 제시했다. ‘유한동형암호’는 연산을 유한 번만 할 수 있다. 가령 계속 곱하기를 하면 암호화된 데이터가 무너져버려 아무 것도 복구가 되지 않는다. 말랑말랑한 금고가 망가지기에 금고를 부셔도 아무 것도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젠트리는 ‘완전 동형암호’를 만들어 잡음이 쌓여 더 이상 연산을 할 수 없는 말랑말랑한 금고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재부팅이라는 과정을 통해 금고를 청소하고 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장치를 만들었다. 무한 번의 연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러면 2009년 젠트리의 논문 이후에 동형 암호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천 교수는 "동형암호는 아주 멋지지만 실용적이지는 않다는 반응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더하기와 곱하기라는 연산을 다할 수 있기는 하지만, 실제 특정한 연산을 어떻게 할 거냐, 예컨대 기계학습이라든지 영상처리를 어떻게 더하기랑 곱하기로 분해해서 할 거냐는 다른 얘기였다. 너무 어려웠다. 그럼에도 뭔가가 가능해지면, 그걸 빠르게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2세대 동형암호가 2011년에 나왔다. 2세대 동형암호는 BGV 스킴(scheme)이라고 불리며, 미국 국방부가 개발을 지원했다. 수학적으로 더 간단한 구조로 만들었다. 이후 3세대 동형암호는 2013년에, 그리고 4세대 동형암호가 2016년에 나왔다.

4세대 동형암호를  천정희 교수 그룹이 만들었다. 천 교수 등 저자 네 사람의 이름을 따라 CKKS(Cheon-Kim-Kim-Song) 논문이라고 불린다. 천 교수 그룹은 반올림연산을 덧셈 수준으로 매우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기존의 연산을 개선했다. 천 교수는 "동형암호라는 로봇에는 더하기하는 팔, 빼기하는 팔, 곱하기 하는  팔이 있었는데, 반올림 로봇팔을 우리가 추가했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비트 당 30분이 걸리던 재부팅 연산이 2018년의 경우 0.5초 만에 가능해졌다.

세계암호학회 사이트에 2016년 프리프린트 논문을 올렸고, 2017년 아시아크립트(Asiacrypt Conference)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만든 4세대 동형암호 이름은 '혜안(HEaaN)'. '혜안'은 '근사 숫자에 대한 대수를 위한 동형 암호(Homomorphic Encryption for Arithmetic on Approximate Numbers)'라는 영어 이름을 줄인 말이다. 천 교수 부인이 작명해 줬다. 참고로 세계3대 암호학회는 크립토(Crypto), 유로크립트(Eurocrypt) 아시아크립트(Asia crypt)다. 암호학자는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않고, 학회에 논문을 낸다. 암호 연구는 논문이 나오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 정수론으로 박사학위

천정희 교수는 KAIST 수리과학과에서 정수론으로 199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한상근 교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오래된 수학의 난제를 연구하는 그룹이었다. 한 교수의 학문적 할아버지가 존 코츠(John Caotes)이고, 존 코츠의 거의 마지막 제자인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가 지난 1994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

천 교수에게 KAIST 박사학위 논문 내용을 물었더니, 소수, 모듈러 연산, 타원곡선, 그리고 내게는 낯선 개념인데 위수(order)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해줬다. 졸업 후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들어갔다. 정수론 전공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궁금해서 갔다가 설득을 당해 3년간 적을 두게 되었다. ETRI가 암호 연구를 하려고 정수론 연구자를 선발한 것이었고, 이곳에서 천정희 교수는 암호에 입문했다. 당시 ETRI연봉은 삼성보다 높았다.

1999년에는 유럽 암호학회인 'Eurocrypt'에 논문을 발표했고, 2000년 세계 암호 학회인 '크립토 2000’에 논문을 제출했다. 2000년 크립토 논문은 KAIST 수리과학과의 고기형 교수와 개발한 걸로, 매듭이론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암호였다. 고기형 교수는 매듭이론 연구자이고, 암호는 천정희 박사가 맡아서 두 개를 접목시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천 교수에 따르면, 당시 세계적으로 새로운 공개 키를 찾는 흐름이 있었다. 정부가 이 일에 관심을 보였기에, ETRI에 있는 천정희 박사는 수학의 다른 분야에 있는 연구자에게 암호를 가르치는 일을 진행했다. 교수들 앞에서 세미나를 했고, 이후 고기형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와서 좀 더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고기형 교수 그룹과 몇 차례 미팅을 했다. 당시 고기형 교수 연구실에 있던 대학원생이 차재춘 현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현 건국대 이상진 교수다.

천 교수는 "지금처럼, 한 번은 고기형 교수님에게 세 시간 정도 털렸다. 그리고 바로 새로운 암호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팅을 마치기 전에 "매듭 그룹에서 교환법칙이 성립하는 부분군을 찾아달라. 그게 있으면 된다"라고 주문했고, 고기형 교수는 "그런 게 있다"면서 바로 답을 내놓았다. 당시 매듭 암호 논문은 지금까지 651회 인용됐다. 세계 최초의 매듭 암호 연구였음에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암호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에 많은 인프라가 필요하나, 한국은 그런 여건을 갖고 있지 못했다.

2006년 1월 ETRI를 그만 두고 미국 브라운대학교 수학과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러 갔다. 브라운대학교 멘토는 조셉 실버만 교수였다. 그는 수론연구자였고, '타원 곡선' 교과서의 저자로 명성 높았다. 천 교수는 정수론 버전의 동역학(dynamics)이라고 할 수 있는 걸(P-adic dynamics) 연구했다.

연구는 재밌었으나 좀 허전했다. 천정희 교수는 ETRI에 들어갈 때 암호학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잠시 거쳐간다고 생각했다. 그걸 중단하고 정수론을 하면서 보니, 정수론 연구가 세상에 임팩트를 주기 힘든 연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호는 잠깐 했으나 연구 결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해오고 그랬다. 실버만 교수도 천정희 박사에게 암호에 관해 계속 물어왔고, 지금은 암호 회사를 차렸다. 그래서 고민 했다. 천 교수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건 세상의 일을 해결하는 데 수학을 쓰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라고 토로했다.

2000년 12월 대전에 새로 생긴 정보통신대학교(ICU) 공학부 교수가 되었다. ICU는 정보통신부가 만든 학교이고 지금은 KAIST에 합병됐다. 천정희 교수는 정수론을 떠나 암호로 돌아왔다. 2001년 9월 미국에서 열린 크립토 학회에 갔다가 재밌는 문제를 봤다. 그리고 해결을 하겠다고 생각해서 '신원 기반 암호'라는 걸 만들었다. 그때 ICU의 유일한 수학자로서 학교 일도 바쁘고 해서 KAIST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차재춘 박사에게 sos를 쳤다. 차재춘 포항공과대학 교수는 당시에 박사학위를 받고 카이스트 고기형 교수 연구실에서 암호를 공부하고 있었다. 바쁜  학사 일정을 소화하던 중 긴 추석 연휴가 있었다. 연휴를 반납하고 차재춘 박사와 연구를 했고, 논문을 냈다.

지금까지 천정희 교수의 논문 중 인용회수가 가장 많은 논문이다. 천 교수가 검색을 해보더니 "1403회"라고 말해줬다. 1400번이면 수학에서  매우 많은 인용횟수라고 했다. 천 교수와 차 교수는 이 논문으로 공개키 암호학회인 PKC학회로부터 지난해 '2003년에 나온 최고의 논문상'을  받았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18년 전에 나온 논문들 중에서 임팩트가 가장 논문을 선정한 것이었다.


천정희 교수는 차재춘 교수와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크립토 학회의 문제 풀기에 돌입, 연구결과 논문으로 암호학회로부터 '2003년에 나온 최고의 논문'상을 받았다.[사진=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천정희 교수는 2003년 2월까지 정보통신대학교에서 일하다가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로 옮겼다. 그리고 천 교수의 자리는 논문을 같이 쓴 차재춘 박사가 이어 받았다. 2006년 유로 크립트 학회에 가서 처음으로 발표(talk)를 했다. 그때는 남이 만든 암호를 깼다는 걸 보인 '분석 논문'이었다. 천 교수는 "분석은 ’내가 암호를 깼다‘라는 걸 보이면 끝났다. 동형암호는 다르다. 동형암호는 수학을 갖고 노는 수학 놀이터다"라고 소개했다.
2012년, 그 동형암호가 세상에 나왔다. 천정희 교수는 동형암호를 접하자마자 물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게 되면 세상이 바뀐다. 그리고 사람들이 관심은 있는데 현재 결과가 안 좋으면, 그건 좋은 수학적인 문제다"라고 판단했다. 그는 그때까지 공격하던 분야를 접고 전격적으로 동형암호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4세대 동형암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천정희 교수는 "매년 나오는 논문 중에서 주요 논문이 100편쯤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는 논문이다. 세상이 기억하는 논문이 드문드문 있을 텐데, 그런 큰 문제에 도전하자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2016년 4세대 동형암호 논문은 문제를 제대로 풀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걸 푼 학생 중 한 명이 송용수였고, 그는 2021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되었다. 천 교수는 "한국이 주도해서 우리가 익숙한 어떤 개념을 갖고 어떤 수학을 만들면 우리, 혹은 우리 후배들이 훨씬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서양인이 만든 수학을 하고 있으니, 서양인에 익숙한 사고와 개념을 동아시아인은 늘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천정희 교수는 그런 수학을 동형암호를 갖고 해보려고 한다.

출처 : 헬로디디(http://www.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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