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있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경기과학고는 전교 1~2등이 들어가는 학교. 중학교 선생님들이 합격했다니 믿지 않았다. 고교 때도 수학 점수는 안 좋아 첫 시험에서는 반 학생 중 뒤에서 두 번째 성적을 받았다. 뒤에서 첫 번째이던 학생이 일반고로 전학가면서는 반에서 꼴찌가 되었다. 당시 카이스트는 입학시험에서 수학 과목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물리, 영어 과목이 150점이었다면 수학은 300점 만점이었다. 수학을 못하면 카이스트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경기과학고에서 수학을 집중 공부해 성적을 끌어올렸다. 수학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다. 1989년 카이스트 수학과가 아닌, 전자전산학부에 진학했다.

차 교수는 한국의 수학 교육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빠른 시간에 많은 문제를 기계처럼 해결하기를 요구하는 한국 초·중·고 수학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중등교육까지 가르치는 수학은 재미있는 수학이 아니다. 특히 사교육을 통해 과도한 훈련을 받은 학생들이 아니면 중등교육 과정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 관심을 잃게 된다. 마치 어린 운동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쓰고 혹독한 트레이닝을 가해 성과만을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후유증으로 나중에 몸과 마음이 상하고 흥미를 잃게 되기 쉽다는 것도 비슷하다. 정말 재능과 흥미를 가진 아이들이 가려지게 된다는 면도 비슷하다.”

카이스트에 입학하자 컴퓨터 천재가 입학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선배는 첨단컴퓨터 실습실 열쇠를 주며 “컴퓨터 수업은 재미가 없을 거니까, 여기에 와서 놀아라”라고 했다. 그는 나중에 유명한 컴퓨터게임 개발자가 되었다. 어떤 선배는 부르더니 “너, 다른 건 몰라도 해커가 되면 안 된다”라고 다짐받으려 하기도 했다.

수학과의 만남은 카이스트 1학년 때 찾아왔다. 수학과 오윤용 교수가 가르치는 선형대수학 중간시험 때였다. 추상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으니, 학생들 아무도 문제를 못 풀었다. 차재춘 학생은 시험이 끝나고도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틀인가 지나서 어느 순간, 풀이를 알게 되었다.

선형대수학 배우며 수학에 빠지다

시험 기간이 끝나고 선형대수학 첫 수업 때 교수님이 시험 관련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학생들 모두 못 풀었으니, 그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질문했다. 오 교수가 풀이를 칠판에 쓰는데 증명은 다섯 줄이면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했다. 그런데 오 교수가 한 줄 쓰고 나서 멈칫했다.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 듯했다. 그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그가 “교수님, 그거요. 이걸 빼서 1이 나오게 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당시 오윤용 교수의 눈빛을 지금도 기억한다. 되게 인자한 표정인데 차재춘 학생 쪽을 돌아보며 이북 말투로 “자네가 이거를 풀었나”라고 말했다. “아니오 못 풀었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걸 알아?” “시험 끝나고 생각해봤는데,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맞아, 그렇게 하는 게 맞아”.

2학년 때 수학과를 선택해 수학을 계속 공부했다. 차 교수는 “수학이 너무 재밌었다. 힘들기는 되게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카이스트 대학원 수학과에 진학해 석사를 1993~1994년에 했고 1995년에 박사과정에 들어가 200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은 위상수학자인 고기형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차재춘 교수는 위상수학자이고, 위상수학에서도 기하위상수학 전공이다.

해석학이나 대수학, 정수론 이런 건 고대 그리스가 기원이다. 반면 공간의 학문인 위상수학은 현대에 와서 시작됐다. 차 교수는 어려서부터 도면 그림 같은 걸 좋아했다. 위상수학은 그런 도식적인 그림을 많이 그리고, 그걸 수학으로 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수학을 뛰어나게 잘했다기보다는, 흥미를 갖고 엄청나게 안 되는 걸 되게 해보려고 했다. 수학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재능이 제일 잘 맞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수학에는 내가 도전하게 만드는 게 많다.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지금부터 재밌는 게임이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안 되는 벽을 만났을 때 포기하는 게 아니고, 뭔가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게 수학의 매력이다.”

위상수학이란 무엇인가? 차 교수는 “위상수학자는 공간이 어떤 구조를 갖는지 알고 싶어 한다”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간이란 건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상대성이론은 공간이 휘어졌다고 말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렇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연속이라는 개념도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종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 찢으면 연속적으로 변형된 게 아니다. 종이를 구부린다든지, 혹은 고무판의 경우 잡아 늘인다든지 하면 연속이다. 그러다가 찢어지면 불연속이 되는 거다. 그런 게 위상수학이다. 공간이라는 건 바꿔 말하면 연속이라는 성질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대상이다.”

위상은 무엇일까? 차 교수에 따르면, 위상은 공간을 연속적으로 휘거나 변형해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고 내재해 있는 어떤 성질이다. 공간에서 불변하는 성질이 위상이다. 도너츠와 머그잔은 위상수학에서 널리 알려진 예다. 도너츠와 머그잔은 생긴 게 많이 다르지만 공간을 연속적으로 잡아 늘이거나 줄이는 방법으로, 즉 찢어 붙이지 않고서 서로 상대의 모양으로 바뀔 수 있다. 이때 두 개가 공통으로 갖는 불변량, 즉 구멍이 한 개라는 것이다.

차 교수에게 “공간에 불변하는 다른 성질들이 또 있느냐”라고 물었다. 차 교수는 “그렇다. 뭘 할 때 변하느냐 안 변하느냐를 정하는 게 사실 수학의 분야를 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하학 얘기를 꺼냈다. 기하학에서는 거리가 변하지 않는다. 거리가 달라지면 변한 거다. 하지만 위상수학에서는 연속적으로 변형시킨 건 똑같은 걸로 보자고 한다. 거리 불변량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가 기하학이고, 위상 불변량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가 위상수학이다.

위상수학자가 연구하는 공간 중에는 ‘지저분한’ 것도 많다. 그런 걸 보는 것도 재밌다. 반면에 자주 등장하고 익숙한 공간도 재밌다. 이런 공간은 깨끗한 공간이라고 한다. 깨끗한 공간의 대표적인 게 다양체(manifold)다. 차 교수는 “다양체 공간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게 기하위상수학(geometric topology)이다. 그리고 나는 기하위상수학을 연구한다”라고 말했다.




‘memoirs’에 실린 차재춘 교수 논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